옥중화 덕흥군 훗날 덕흥대원군
23일 토요일 옥중화 24회가 방송되었습니다. 오늘 옥녀가 덕흥군(훗날 덕흥대원군)의 수청을 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옥녀는 덕흥군에게 자식 중 에 왕이 나온다 이야기를 합니다. 이 왕이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입니다. 따라서 덕흥군은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됩니다. 덕흥군은 조선 13대임금 명종의 이복 형 입니다. 불행하게도 명종이 34세에 승하하셔 적정자가 없자 덕흥군의 셋째아들 하성군이 양자로 입적하여 왕위를 계승합니다. 이 분이 조선 14대 임금 선조입니다...
대원군 - 조선 시대 적통인 임금의 자손이나 전임 임금의 대가 끊겨 방계(傍系)인 종친 중에서 왕위를 이어받을 때, 그 임금의 친아버지에게 주는 칭호 및 관직으로서, 군호 가운데 하나이다.
덕흥군은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자식입니다.
창빈 안씨는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행동이 정숙하고 참신하여 대비 윤씨(정현왕후-조선 9대임금 성종의 둘째계비)의 눈에 들어 대비의 후원으로 스무 살에 중종의 승은을 입어 숙용까지 그 지위가 올랐습니다.
영양군을 1521년에, 정신옹주를 1526년에, 덕흥군을 1530년에 낳았습니다. 품행이 단정하여 문정왕후(명종의 어머니)와의 사이도 돈독했고, 중종 사후에도 문정왕후의 만류로 인하여 관례대로 승려가 되지 않고 궐 안에 머물렀다.안씨가 죽은 후에도 문정왕후는 그녀의 자식들을 돌보아 주었고 후사 없이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명종비 인순왕후는 안씨의 자손인 하성군을 즉위시켰습니다. 선조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은 그녀의 후손들입니다.
숙용 - 조선 시대에, 후궁에게 내리던 종삼품 내명부의 품계. 소원(昭媛)의 위, 소용(昭容)의 아래이다.
또한 윤원형에게 암살을 시도한 배후로 의심되었던 봉성군 측근으로 정난정이 추측합니다.
봉성군은 중종의 후궁인 희빈 홍씨의 차남입니다. 장남은 금원군이며 인종과 명종의 이복 형입니다.
소윤ㆍ대윤의 파쟁 속에서 대윤인 윤임의 조카였던 까닭으로 윤임이 봉성군을 왕위에 오르도록 계책하고 있다는 모략을 받아 대윤이 몰락한 을사사화가 일어났고, 봉성군은 유배를 떠납니다.
1년뒤에는 1547년(명종 2년) 음력 9월 18일, 부제학으로 있던 정언각이 한강 이남의 양재역에서 한 장의 익명서를 발견하고(양재역벽서사건) 이를 명종에게 고하였다. 을사사화의 연장인 정미사화가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조작으로 사림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 었습니다.
윤원형 일파는 애초에 윤임 등의 역모를 다스릴 때에 그 처벌을 가벼이 했기 때문이라고 간하고, 이어 윤임 일파는 물론이고 봉성군에 대해서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을 요청합니다. 이후에도 봉성군을 죽이라는 상소는 계속되었으나, 명종은 전혀 윤허하지 않지만
결국 명종은 이러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봉성군에 대해 자진하라는 명을 내리고 말았다. 이때 봉성군의 나이 20세였습니다. 당시 자진 명령을 전달받은 봉성군은 목욕을 하고 곧바로 자살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