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화 27회,28회에 세곡선과 혜민서가 등장합니다.. 세곡선의 정의와 구조.
참고로 오늘 21일에 옥중화 29회가 방송됩니다.올림픽때문에 가물가물 하기도하고
28회에 내용을 살짝 설명드리자면,
윤태원(고수)는 임시과거시험이 취소되자 문정왕후에게 바칠 상납금을 마련하기위해 세율을 올립니다.
상단 행수들이 반발하지만 세율을 높여 태원은 문정왕후에게 봉은사증축에 사용 될 3만냥을 상납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명종은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꾸민 조작된 역병으로 역풍을 맞습니다.
윤태원의 대사에 세곡선이 등장합니다.
"삼개나루-세곡선 상단은 기존 1할의 세율을 3할로, 명나라와 교역하는 상단은 3할에서 5할로, 왜와의 교역권 세율은 2할에서 4할로 늘릴 것", 여기서 주목할점은 상단이 세곡선을 담당하고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세곡선의 정의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나라에 바치는 곡식을 실어나르던 배, 곡식이아닌 특산물도 같이 실어 납부했습니다.
세곡선은 조운선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세곡선이 조운선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조운선이 세곡선으로 쓰인거죠.
고려시대에도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조운선이아닌 초마선이라고 불렸답니다.
조선시대에는 대대적으로 체계화시켜 발전시켜 계승한겁니다. 전국에 세곡을 관리하는 조창을 정비하고, 조운선의 선박제도를 체계화하여 효율적으로 운영됩니다. 세곡선(조운선)의 한 척당 1000석이라는 상당한 양의 곡식을 수송할 수 있었답니다. 조창은 지방 세곡들을 모아두는 창고입니다. 세곡들을 조창에 일정기간동안 모아 한번에 중앙 경창으로 수송했습니다.
위의 사진과 도면만 봐도 확실히 세곡선(조운선은) 곡식을 최대한 많이 적재하도록 설계된거 같습니다. 또한 무게중심을 잘 잡기 위해 너비도 넓게 만든거 같습니다. 세곡선의 특성상 빨리 이동하는것보다는 많은 양을 이동시켜야함에 당연한 형태같습니다. 빨간 부분에 곡식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조운선은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만들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 상업이 발달로 민간자본과 무역업이 발달하면서 민간에서도 관선보다 튼튼한 배를 만들면서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지금 옥중화에서도 볼 수있습니다. 세곡선 운영인원이 기존에는 나라에서 조졸 2명을 동원하던 것이 숙종 30년을 기점으로 나라에서 임노동자를 고용하는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 조선 후기로 가면서 대동법 등을 거치며 세금을 기존의 쌀 대신 돈으로 내는 금납화가 퍼지면서 관영 조운업은 쇠퇴하고 근대에 서양 운송수단의 유입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리고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역병을 조작하여 역병에 걸린 백성들이 혜민서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혜민서(惠民署)는 조선시대에 의약과 일반 서민의 치료를 맡은 관청입니다.
1392년(태조 1)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혜민고국(惠民庫局)을 설치하였다가, 1414년(태종 14) 혜민국이라 고쳤고 1466년(세조 12년)에 혜민서로 개칭하였으며, 1882년(고종 19년)에 폐지되었는데요.
아래 사진은 MBC드라마 마의에 혜민서 오픈세트장입니다.
예전에 혜민서가 있던 터의 현재 주소는 중구 삼일대로 356 을지로 2가 88-6입니다. 조그만한 비석이 하나 있는데... 너무 초라해보입니다. 그래도 조선시대의 백성들에게 많이 힘이 되었던 곳일텐데 아쉽네요.
관원은 타관이 겸임하는 제조(提調) 1명, 주부(主簿)·의학교수·직장(直長)·봉사(奉事)·의학훈도 각 1명과 참봉 4명이 있었다. 그중 채용시험의 최고 득점자와 직장 이상의 관원 중 1명은 구임원(久任員)이고, 그 외는 체아직(遞兒職)이었습니다.
출처-위키백과,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