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옥중화에서 옥녀가 소격서에서 주최하는 풍어제에 주역을 읊으로써 다시 한양에 가게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소격서가 어떤 곳이고 풍어제는 요즘도 진행되는 축제이자 제사입니다...
그 의미가 옛날과 다르죠 축제성향이 강해졌니까요.
소격서는 도교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도교의 기본 정도만 설명드리려합니다.
도교
도교(道教)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서, 신선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 · 오행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道家)의 철학을 도입하고, 또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습니다.
도교는 하나인 도의 세 가지 모습인 옥청 · 상청 · 태청의 삼청(三清)을 최고신으로 하는 다신교입니다.
도교는 사상과 종교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도가(철학) + 불교(종교), 이러한 형태로 생긴 배경에는 도교의 절대적인 경전<도덕경> 중 "도를 도라 부르면 이미 도가 아니다. 이름 부를 수 있으나 언제나 그 이름은 아니다." 문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계속 변화는 것이 도라고 했기에 사상에서 종교로 변화하기에도 용이했던거 같습니다. 실제로 분파도 많고 계속 변형됩니다.
우리나라에 도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기원전 624년 고구려 영류왕 7년때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교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 줄것을 요청, 당나라에서는 책과 도사를 파견하여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옥중화 24회 성지헌(최태준)과 옥녀(진세연)은 박태수(전광렬)가 남긴 유품을 찾는 장면 사진입니다. 실제로 옥녀는 팔괘진을 보고 유품의 위치를 찾습니다. 소격서는 도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관청이다보니 주역에도 해박한 지식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옥녀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팔괘진은 주역과 연관이 있습니다.
주역
주역은 또 다른 말로 역경이라고 하고 세계의 변화에 관한 원리 기술한 책입니다. 전문가들은 쓴 연대는 대략 기원전 403년 동주후기~전국시대로 추정하고있습니다. 고대에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뼈로 치는 점(占)은 그것들을 불에 구웠을 때 생긴 금(線)을 판단의 재료로 하여 길흉을 점치는 일변 서죽을 써서 길흉을 점치는 방법,
소격서(소격소)
고려, 조선 양 왕조에 걸쳐 국가는 참성단에서 도교식 제전행사인 초제(醮祭)를 거행했다.
사진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법정동인 소격동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소격서(昭格署)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하늘과 별자리, 산천에 복을 빌고 병을 고치게 하며 비를 내리게 기원하는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조선의 관청입니다.
고려 시대에 소격서와 유사한 도교 관련 관청은 복원궁, 신격전, 정사색, 소전색, 태청관, 태일전, 구요당 청계배성소 등 여러 곳이 있었는데 태조 원년(1392년)에 모두 합하여 소격전(昭格殿)이라 명명하였고
태조가 죽은 후 세조 12년(1467년)에 소격서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관원으로는 영(令:종5품) 1명, 별제(別提:정6품) 2명, 참봉(종9품) 2명과 잡직(雜職)으로 15명의 도류(道流)를 두었고 도류는 도사(道士)라고도 하며 4품으로 거관(去官)되었는데, 이들은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얻은 사람 중에서 선발되었다.
중종 13년(1518년)에 조광조를 필두로 한 사림파의 강한 요구로 혁파되었다가 기묘사화로 사림이 실각하자 이듬해인 1520년에 다시 세워졌다.
그 뒤 임진왜란 와중에 제사가 폐해졌고 다시 세워지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다.
25화에 옥녀가 풍어제에서 큰 역할을 하면서 옥녀가 아마 이번 26화에는 소격서의 도류가 될거같습니다. 그리 높은 직책은 아니지만 관비보다는 낫죠.
풍어제는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서해안풍어제 ,궁평항풍어제,황도풍어제,칠함 풍어제,기장 풍어제 등 현재에도 하고 있습니다.
서해안 풍어제- 홈페이지 www.mudang.org/ 다른곳은 홈페이지는 없습니다.
참고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