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옥중화 6회로 기억하는데요. 정확하지 않으니 굳이 찾보시진 마세요 ㅋ
조선에 4대 사화가있는데요. 그 중 두 사화의 주인공은 윤원형입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 윤원형이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고,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삶들은 피폐해졌습니다. 윤원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았고
권력을 차지하기위 자신의 친형도 처형시켰습니다. 그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을미사화
중종(조선11대왕)에게는 3명의 부인이있었습니다.
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
단경왕후는 즉위직후 폐위되어 후사가 없고
장경왕후는 인종(조선12대왕)을 출산후 6일뒤 돌아가십니다.
문정왕후는 명종(조선13대왕)을 출산합니다.
장경왕후 즉, 인종을 지지하는 세력을 대윤파 대표적인 인물은 윤임(장경왕후의 동생)
문정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은 소윤파 대표적인 인물은 윤원로(문정왕후 오빠)&윤원형(동생)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인 명종(조선을 왕위에 올리고싶었습니다. 하지만 적장자원칙으로 인종이 왕위를 물려받습니다.하지만 9개월도 안되 승하하셨고, 명종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인종세력이였던 대윤파를 대대적으로 척결
이것이 을사사화입니다.
정미사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남아있던 대윤파의 잔당을 확실하게 몰아낸 사건입니다.을미사화는(1545년) 2년뒤인 명종2년 남은 대윤파를 완전히 몰아내기위해 정미사화(1547년)를 일으킵니다.
이미 왕은 조카인 명종이며 권력의 핵심였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정미사화를 일으켜 남은 잔당세력을 꼭 제거하려 했을까요?
답을 알기위해서는 을마사화와 정미사화의 중간인 1546년에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윤원형의 형인 윤원로가 유배당하고 사사됩니다.
사사(賜死) - 극형에 처할 죄인을 대우하는 뜻으로, 임금이 독약을 내려 자결하게 한 일
왜 소윤파가 권력을 가졌는데 윤원로가 유배를 갔을까요? 아마 을미사화가 성공한 뒤 소윤파내에서도
권력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윤원로가 패배하여 유배갔습니다.
남아있던 대윤파세력은 형제의 권력다툼으로 힘의 균열이 생겼을것이고
충분히 자신들이 다시 권력을 갖을 수 있는 명분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을겁니다.뭐 안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윤원형은 불안했기때문에 확실히 하기위해서 남아있는 대윤세력을 척결하고자 합니다.
양재역 벽서사건(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은 정미사화를 일으킨 매개체 역활입니다.
이 해 9월 부제학 정언각(鄭彦慤)과 선전관 이로가 경기도 과천 양재역(良才驛) 벽 위에서 ‘여왕이 집정하고 간신 이기(李芑) 등이 권세를 농락하여 나라가 망하려 하니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라는 내용의 벽서를 발견했다. 이 벽서는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는 명종에게 지시하여 윤임의 일파를 숙청하게 하였다.
양재역벽서사건-눈높이 대백과 사진인용
양재역벽서사건-다음블로거'장안봉님'사진인용
윤원형은 옥중화드라마안에서도 박태수의 죽음을 영원이 완벽하게 묻기위해 옥녀를 죽이려고했습니다.
역사속에서도 윤원형은 대윤파,자신의 형인 윤원로 등 많은 인물들을 완벽하게 처리합니다.
이렇게 권력의 핵심, 폭정을 휘둘지만 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의 권력도 막을 내립니다. 첩인 정난정과 같이 유배를 가고 사형당할것을 알고 같이 자결했다고합니다.
후손들은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참고
생살(生殺)의 권한을 쥐며 권세를 쥐고 사형될 사람도 뇌물을 받고 무죄 석방하는 한편 노비·전토들을 막대하게 점령하고 사치생활을 끝없이 누렸다. 1560년(명종 15년)에는 부원군으로 진봉되어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이 되었다. 이후 우의정을 거쳐 1563년 영의정에 올랐다. 국왕 명종의 외삼촌이자 정승으로 세도를 부리다가,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정난정에 의해 독살된 본부인 연안 김씨의 계모 강씨가 윤원형과 정난정을 관아에 고발하였으며, 이후 양사의 탄핵을 받아 벼슬을 잃고 방귀전리(放歸田里)의 명을 받은 뒤 강음에 은거하였다. 일설에는 유배된 것이라 하며, 사약을 들고 오는 금부도사를 보고 첩 정난정과 함께 자살하였다고도 한다.
1565년 윤원형과 정난정을 사형에 처하라는 사헌부,사간원, 홍문관의 탄핵이 빗발쳤고, 윤원형은 그해 11월18일 에 경기도 강음현(江陰縣)에서 자결하였다. 이이는 자신의 저서 석담일기에서 금부도사가 온다는 이야기를 잘못 듣고, 사형당하기 전에 미리 정난정과 함께 약을 먹고 자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