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옥중화 48회에서 명종과 윤태원이 손을 잡고 함께 윤원형과 정난정을 체포 및 구금(안치)시켰습니다. 이때 명종은 윤태원에게 사헌부 지평의 자리를 주어 힘을 실어줬습니다..사헌부 지평!.
사헌부 지평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오늘날 특임검사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외지부도 신선했지만, 별로 안나오고 오히려 사헌부 지평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다보니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저는 사헌부 지평에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합니다.
오늘 옥중화 50회에서는 명종이 옥녀의 신분인 옹주마마인걸 알게되기도 합니다.
┃사헌부의 구성
일단 사헌부에서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헌부는 조선시대에 언론, 사법, 감찰의 역할을 하던 국립기관입니다. 오늘날에 검찰,감사원 비슷합니다. 본래 고려시대부터 사헌부는 존재했습니다. 조선건국 이후 태조가 계승하고 세종때 경국대전을 편찬하면서 구성이 정리하게됩니다. 최종적으로는 종2품 대사헌(大司憲) 1명 / 종3품 집의(執義) 1명 / 정4품 장령(掌令) 2명 / 정5품 지평(持平) 2명 / 정6품 감찰(監察) 13명으로 구성됩니다. 감찰 13명 중 문관 3명, 무관은 5명, 음관 5명입니다. (음관은 음서제도로 선발된 관료들을 뜻합니다.)
윤태원이 맡은 사헌부 지평은 정 5품에 해당하죠. 이조정랑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관직이기도 합니다.
사헌부 지평은 보통 문관 급제자 중 청렴 강직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므로, 승문원(承文院), 성균관(成均館), 홍문관(弘文館) 등을 거친 젊고 기개가 있는 인재들이 임명됩니다. 지평을 포함한 대관들은 사헌부의 기간직 요원이기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사헌부의 직무
사헌부의 직무는『경국대전』에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악(寃抑)을 풀어주고, 남위(濫僞)를 금하는 등의 일을 맡는다고 되어 있는 것처럼, 백관의 비위사실에 대한 탄핵감찰권(彈劾監察權)과 일반범죄에 대한 검찰권을 아울러 행사할 수 있는 동시에 불복공소(不服控訴)에 대한 고등법원으로서의 구실까지 겸하는 등 왕지(王旨)를 받아 법률을 집행하는 법사(法司)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인사(人事)와 법률개편의 동의 및 거부권행사라고 할 수 있는 서경권(署經權) 등 국정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사헌부의 몰락
이들 사헌부의 대관들은 이조 전랑과 함께 사대부 정치의 꽃으로 당당한 세도를 자랑하였으며, 조선 초중기까지는 군권과 신권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하지만 숙종 시대 환국을 거치면서 서인의 독재가 시작됨에 따라 사헌부 역시 그 기능이 변질되기 시작해서 집권 당파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데 급급하기 시작했고 결국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하여 철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아래사진은 사헌부 지평 교지입니다.
출처 충청남도박물관